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의 불혹.
세상의 이치를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녔다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다.
바른 안목이 열렸으므로 부질없는 세상일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확고부동한 자신의 신념으로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선비의 삶을 살아야
하는 나이라는 뜻도 되겠다.
18세기를 대표하는 조선시대의 문인 이용휴 李用休, 1708~1782 가 마흔이 된
정재중 鄭在中 에게 쓴 편지에서 "눈 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외부를 보는 눈이요, 다른 하나는 내부를 살피는 눈이다.
외부를 보는 눈으로는 사물을 살피고, 내부를 보는 눈으로는 이치를 살핀다.
그런데 외부를 보는 눈은 현혹되기 쉬우므로 반드시 내부를 보는 눈에 의해
바로 잡혀야만 한다. 따라서 내부를 보는 눈이 더 온전하다"고 조언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세상일에 현혹되지 않고 삶의 본질을 바로 보아야 불혹의 삶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선가 禪家의 어록 [전등록 傳燈錄]에 "개는 흙덩이를 쫓아가지만 사자는 흙덩이를
던진 사람을 물어버린다." 는 법문이 전하는데 거짓과 진실을 잘 판단해야 된다는
가르침이다.
독수리는 70년 정도의 수명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수리가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독수리는 40세 정도가 되면 부리와 발톱이 무디어지므로 더 이상 먹이 사냥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때 독수리는 절벽으로 몸을 던져 무딘 부리를 없애고 새로운 부리가 나오길 기다린다.
그리고 새로 자란 부리로 이번에는 자신의 발톱을 하나하나 뽑는다.
이런 아픔과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또 하나의 부리와 발톱이 탄생하는 것이다.
독수리에게 40세는 생사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람의 나이 마흔에도 자기 혁신을 위한 삶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생을 80으로 기준하면 절반을 살았으니 제2의 삶을 준비할 때라는 것을 절감한다.
내 안에서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타성에 젖은 삶에서 주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도 40세는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터닝 포인트다.
사회학자 윌리엄 새들러 박사는 마흔 이후의 장래에 대해 검토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착륙'을 준비하는 것인지, '이륙'을 준비하는 것인지 결정하라고 했다.
---- 현진스님 <오늘이 전부다> ---
..... 참 서릿발 같은 가르침이 담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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